728x90
반응형

일상다반사/시 81

김이듬, 정말 사과의 말

만지지 않았소 그저 당신을 바라보았을 뿐이오 마주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소 난 당신의 씨나 뿌리엔 관심 없었고 어디서 왔는지도 알고 싶지 않았소 말을 걸고 싶지도 않았소 우리가 태양과 천둥, 숲 사이로 불던 바람, 무지개나 이슬 얘기를 나눌 처지는 아니잖소 우리 사이엔 적당한 냉기가 유지되었소 문이 열리고 불현듯 주위가 환해지면 임종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오 사라질 때까지 우리에겐 신선도가 생명으로 직결되지만 묶고 분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한 칸에 넣었을 것이오 실험해보려고 한 군데 밀어 넣었는지도 모르오 당신은 시들었고 죽어가지만 내가 일부러 고통을 주려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난 죄책감을 느끼지 않소 내 생리가 그러하오 난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의 생기를 잃게 하오 내가 숨 쉴 때마..

일상다반사/시 2014.11.19

이영광, 높새바람같이는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랑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하나 흐르지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출처] 높새바람같이는ㅡ이영광|작성자 임현정

일상다반사/시 2014.11.19

김경미, 연희

나도 연희야 외로움을 아주 많이 타는데 나는주로 사람들이랑 잘 웃고 놀다가 운단다 속으로 펑펑그렇지?( 나는 동생이 없으니 뼛속에게 묻는단다) 열한살 때 나는 부모도 형제도 많았는데어찌나 캄캄했는지 저녁 들판으로 집 나가 혼자 핀천애고아 달개비꽃이나 되게 해주세요사람들 같은 거 다 제자리 못박힌 나무나 되게 해주세요날마다 두 손 모아 빌었더니 달개비도 고아도 아닌 아줌마가 되었단다 사람들이랑 잘 못 놀 때 외로워 운다는 열한살짜리 가장열한살짜리 엄마야 민호 누나야 조속히 불행해 날마다강물에 나가 인간을 일러바치던 열한살의 내가 오늘은 내게도 신발을 주세요 나가서 연희와 놀 흙 묻은 신발을 주세요 안 그러면 울어요 외로움을 내가요 아주 많이타서요 연희랑 잘 못 놀면 울어요달개비도 천애고아도 아닌 아줌마가열..

일상다반사/시 2014.11.19

박시하, 파르티타

주머니 속처럼 긴밀하게죽은 눈이 내려온다 무언가가 무언가를 하얗게 덮기 위해 흘러왔고흘러가기 때문에 입을 벌리면 밤이 기척도 없이 심장에 쌓인다 머리칼은 하얗게손은 파랗게심장은 검게, 검게 결국 너를 부를 수 없는 이유는검은 심장이 폭설처럼내게로 푹푹 쌓이기 때문에 검게 죽은 흰 손목을 매단 울음소리를 타인이라 부른다신이라 부른다 이유 없이 쌓이는 밤을

일상다반사/시 2014.11.19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