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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시 81

당신의 심장을 나에게

당신과 재회했다. 이별은 헤어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 살게 되는 병에 걸리게 한다. 내 기억은 당신에게 헤프다. 어쩌면 이리도 다정한 독신을 견딜 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틀린 말이 한 마디도 없다. 당신의 기억이 퇴적된 검은 지층이 내 안에 암처럼 도사리고 있다. 어떤 망각에 이르러서는 침묵이 극진하다. 당신은 늘 녹슨 동전을 빨고 우는 것 같았다. 손이 잘린 수화(受話)를 안다. 우리는 악수를 손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추상의 무덤에서 파낸 당신의 심장을 냇가에 가져가 씻는다. 누가 버린 목어(木魚)를 주웠다. 살덩어리가 단단해서 더 비렸다. 속마음을 다 드러내면 저토록 비리게 굳어버린다면, 당신의 이야기. 이따금씩 부화하는 짐승의 말. 지금 쉬운 것은 훗날에는 아쉬운 것이다.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이 ..

일상다반사/시 2014.11.19

최라라, 곡선의 어떤 형태

1.좀 먼 얘기지만 이건 향유고래 이야기야 크리스마스 이브였어 고래는 해안선처럼 누워있었지 그 적나라한 곡선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생각해 본 적 있니 어느 날의 죽음에 대해 고래는 제 죽음이 그리 둥글 줄 생각이나 했을까 2.그 저녁에 떨어진 사과는 처음부터 둥글었으나 사과만 모르는 사실이었다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었으므로 꿈꾸지 못하는 세계가사과에게는 있었다언제나 있어서 한 번도 없었던 생각이명이었다 둥근 씨앗은메아리가 되는 곡선의 한 형식이 사과를 거쳐 사과에게 간다 3.둥글게 돌아가는 계단의 중간이었다그곳에서 당신은 헤어지자 했다계단이 끝날 때까지 걷다 보면뒤돌아봐도 뒤는 안 보일 거라고이별인 줄도 모르게 이별하는 거라고 4.곡선은 대체로 위험하다당신에게 가는 내 마음처럼 당신에게 갔다 돌..

일상다반사/시 2014.11.19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두 눈을 깊게 뜨고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첼로를 켜며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달력 속에서 뚝 뚝꽃잎 떨어지는 날이면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 와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

일상다반사/시 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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