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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시 81

김경인, 프라이데이 클럽

금요일엔 꼭 만나기로 해요 우리 닮은 친구들이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면 아주 단순해진 얼굴로 창문을 열기로 해요 죽음힘을 다해 초록을 내뿜는 나무처럼 점점 얇아지기로 해요 황혼이었던 사람과 바다로 떠난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금요일은 온통 귀뿐이에요 흘러나갔던 친구들이 한 명씩 귓속으로 쏟아지는 이 시끄러운 밤은 주름투성이 커튼에 휘감겨 숨을 거두는 고양이처럼 아주 조금 울고 싶어요 숨은그림찾기는 그만 하기로 해요 여름이 여름을 향해 뒷걸음질치고 이내 지겨워진 나무들이 이파리를 뚝뚝 떨구는 너무나 환한 아침 우린 가장 아름다운 정오가 되어 다신 나타나지 말기로 해요 어제 말고 오늘 말고 내일은 꼭 사라지기로 해요

일상다반사/시 2014.11.19

허연,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야 도착을 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난 소포를 뜯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소포엔 재난처럼 가버린 추억이 적혀 있었다 하얀 망각이 당신을 덮칠 때도 난 시퍼런 독약이 담긴 작은 병을 들고기다리고 서 있을 거야. 날 잊지 못하도록, 내가 잊지 못했던 것처럼 떨리며 떨리며 하얀 눈송이들이 추억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일상다반사/시 2014.11.19

강신애, 가장 조용한 죽음

몽골에서양 잡는 것을 보면사람 둘, 짐승 하나가 사랑을 나누는 것 같다 한 사람은 뒤에서 양을 꼭 껴안고한 사람은 앞발을 잡고명치를 찔러애인의 가슴을 움켜쥐듯 심장동맥을 움켜쥐고가장 고통 없이 즉사시킨다 내가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네가 나를 살리는 것이다 속삭이는 주인의 품에 폭 안겨양은 한 마디 비명도 없이커다란 눈만 껌벅이고 있다 하늘의 솜다리 꽃이하강한 양 초원의 말발굽에 밟혀 진동하는 꽃향기처럼제 몸 냄새를 들판에 퍼뜨리지만에튀겐*에게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조용히 별로 돌아가는아름다운 환생을 지켜보는 것 같다[출처] 가장 조용한 죽음 / 강신애|작성자 마경덕

일상다반사/시 2014.11.19

허연,목요일

사람들 틈에 끼인 살아 본 적 없는 생을 걷어 내고 싶었다. 모든 게 잘 보이게 다시 없이 선명하게 난 오늘 공중전화통을 붙잡고 모든 걸 다 고백한다. 죽이고 싶었고 사랑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는 성경 구절에도 마음이 흔들린다고. 그리고 오늘은 목요일. 죽이 끓든 밥이 끓든 나는 변하지 못했고 또 목요일. 형상이 없으면 그림이 아니야. 따귀 한 대에 침 한 번씩 뱉고 밤을 새우면 신을 만날 줄 알았지. 그림 같은 건 잊은지 오래라는 녀석들 몇 명과 그들의 자존심과 그들의 투항과 술을 마신다. 그 중에 내가 있다. 오늘은 목요일. 결국 오늘도 꿈이 피를 말린다. 그 꿈이 나한테 이럴 수가.

일상다반사/시 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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