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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 119

김경미, 연희

나도 연희야 외로움을 아주 많이 타는데 나는주로 사람들이랑 잘 웃고 놀다가 운단다 속으로 펑펑그렇지?( 나는 동생이 없으니 뼛속에게 묻는단다) 열한살 때 나는 부모도 형제도 많았는데어찌나 캄캄했는지 저녁 들판으로 집 나가 혼자 핀천애고아 달개비꽃이나 되게 해주세요사람들 같은 거 다 제자리 못박힌 나무나 되게 해주세요날마다 두 손 모아 빌었더니 달개비도 고아도 아닌 아줌마가 되었단다 사람들이랑 잘 못 놀 때 외로워 운다는 열한살짜리 가장열한살짜리 엄마야 민호 누나야 조속히 불행해 날마다강물에 나가 인간을 일러바치던 열한살의 내가 오늘은 내게도 신발을 주세요 나가서 연희와 놀 흙 묻은 신발을 주세요 안 그러면 울어요 외로움을 내가요 아주 많이타서요 연희랑 잘 못 놀면 울어요달개비도 천애고아도 아닌 아줌마가열..

일상다반사/시 2014.11.19

박시하, 파르티타

주머니 속처럼 긴밀하게죽은 눈이 내려온다 무언가가 무언가를 하얗게 덮기 위해 흘러왔고흘러가기 때문에 입을 벌리면 밤이 기척도 없이 심장에 쌓인다 머리칼은 하얗게손은 파랗게심장은 검게, 검게 결국 너를 부를 수 없는 이유는검은 심장이 폭설처럼내게로 푹푹 쌓이기 때문에 검게 죽은 흰 손목을 매단 울음소리를 타인이라 부른다신이라 부른다 이유 없이 쌓이는 밤을

일상다반사/시 2014.11.19

김경인, 프라이데이 클럽

금요일엔 꼭 만나기로 해요 우리 닮은 친구들이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면 아주 단순해진 얼굴로 창문을 열기로 해요 죽음힘을 다해 초록을 내뿜는 나무처럼 점점 얇아지기로 해요 황혼이었던 사람과 바다로 떠난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금요일은 온통 귀뿐이에요 흘러나갔던 친구들이 한 명씩 귓속으로 쏟아지는 이 시끄러운 밤은 주름투성이 커튼에 휘감겨 숨을 거두는 고양이처럼 아주 조금 울고 싶어요 숨은그림찾기는 그만 하기로 해요 여름이 여름을 향해 뒷걸음질치고 이내 지겨워진 나무들이 이파리를 뚝뚝 떨구는 너무나 환한 아침 우린 가장 아름다운 정오가 되어 다신 나타나지 말기로 해요 어제 말고 오늘 말고 내일은 꼭 사라지기로 해요

일상다반사/시 2014.11.19

허연,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야 도착을 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난 소포를 뜯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소포엔 재난처럼 가버린 추억이 적혀 있었다 하얀 망각이 당신을 덮칠 때도 난 시퍼런 독약이 담긴 작은 병을 들고기다리고 서 있을 거야. 날 잊지 못하도록, 내가 잊지 못했던 것처럼 떨리며 떨리며 하얀 눈송이들이 추억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일상다반사/시 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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