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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그것은투명한 눈꺼풀​안과 밖의 온도 차로 흐려진 창가에서 "무심은 마음을 잊었다는 뜻일까 외면한다는 걸까" 낙서를 하며 처음으로 마음의 생업을 관둘 때를 생각할 무렵 젖는다는 건 물든다는뜻이고 물든다는 건 하나로 섞인다는 말이었다. 서리꽃처럼 녹아떨어질 그 말은, 널 종교로 삼고 싶어, 네 눈빛이 교리가 되고 입맞춤이 세례가 될 순 없을까 차라리 나는 애인이나의 유일한 맹신이기를 바랐다​잠든 애인을 바라보는 묵도 속에는 가져본 적 없는 당신이란 말과 곰팡이 핀 천장의 야광별에 대한 미안함이 다 들어 있었다고 그럴 때 운명이란 점심에 애인이 끓인 콩나물국을 같이 먹고, 남은 한 국자에 밥을 말아 한밤에 홀로 먹는일이었다. 거인의 눈동자가 이쪽을 들여다보는 듯 창밖은깜깜. 보풀 인 옷깃 여미며 서둘러 떠나갔..

일상다반사/시 2014.11.17

이승희, 110-33

외로운 것들이 갈수록 착해지는 게 싫어서비명이 말랑해지도록 내버려두는 건 죽기보다 싫어서버려진 것들은낡아가지 않고 죽어버리라고종일 휘파람을 불었다 먹다버린 빵처럼 떼어먹히고세상 밖으로 자꾸 몸이 기울 때내가 살던 응암동 110-33호는이승이었던가비가 오면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바람이 불면맨드라미 붉은 목을 찾아아무리 마음을 세워봐도이건 나보고 죽으라는 건지 살라는 건지다시 오더라도 이렇게 오는 것은아니었다고 나는 죽더라도 온 힘을 다해 죽을 거라고 다짐했다. 이승희,110-33

일상다반사/시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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