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이문재, 큰 꽃

2014. 11. 17. 11:53











꽃들은 내려놓고 죽을 힘을 다해 피워놓은

봄 꽃들을 떨구어 놓고

봄나무들은 서서히 연두빞으로 돌아간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는 맑은 노래가 있지만

나는 봄나무들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산수유 진달래 산벗 라일락 철쭉

꽃 진 봄나무들은 신록일 따름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어도

꽃이 지면 같이 울지못한다.

꽃이 지면 나는 너를 잊는 것이다.


꽃 진 봄나무들이 저마다 다시 꽃이라는 사실을

나무가 저마다 더 큰 꽃이라는 사태를

활활 타오르는 푸른 숲의 화엄을

나는 눈뜨고도 보지 못한 것이다.


꽃은 지지않는다.

꽃이 지면 나무들은

온몸으로 더 큰 꽃을 피워낸다.

나무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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