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시

최금진, 잠수함

윤성님 2024. 6. 2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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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수함,
네가 사는 물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자꾸 아래로 침잠하는 버릇, 아무데도 정박할 수 없구나
문어발처럼 뻗은 섬의 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용암을 토하는 화산의 아가리가 얼마나 깊은지
나는 네가
그런 어둡고 탁한 깊이를 평생 모르고 살아가길 바란다
어느날엔가 그냥 장난처럼 낚싯대를 가지고 와
그 끝에 잠시 파닥거리는 웃음을 미끼로 달고서
재미있게 하루를 드리웠다 가거라
그때 나는
온통 철갑으로 둘러진 무거운 몸을 죄악처럼 입고서
네 그림자 밑을 조용히 스쳐지나갈 것이다
녹슨 쇳조각 떨어져내리는 폐선처럼
심해의 어둠에 나를 꿇어앉혀야 할 일만 남은 것처럼
미안하다, 너에게 가지 못한다
나는 잠수함,
물 밖으로 꺼내놓은 작은 잠망경 하나에
행복한 너를 가득 담고서 네 앞을 지나간다
깊은 해구 속에서
무시무시한 귀신고래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나는 밑바닥을 산다 그리고
이제 간신히 너 하나를 통과해 가고 있다
미안하다,
너에게,
다신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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