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그는 귀가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그는 시력이 아주 나빴다

세 번째 그는 말을 하지 못했다

네 번째 그는 길을 외우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그는

검은 안경을 쓰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하루 종일 입을 닫고

목 떨어진 칸나에 긴 목을 내어주고 지냈다

아는 길이 없었으므로

종점에 있는 나를

오랫동안 노숙자로 만들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전생을 펼쳐놓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일과

절벽을 뛰어내리는 미친 짓만을 반복했다

그 후의 기억들은

몹쓸병을 앓고 있었으므로

쓸쓸한 빗물이 창가에 고이지 않는 날에도

고독은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왔다

 

다정하지 않은 이가 참혹하게 웃고 있는 밤

고양이 눈알이 내 너덜한 살점을 노리는 밤

몹쓸 병이 다시 도지더라도 오늘밤

내 울음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메모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희, 110-33  (0) 2014.11.17
유희경, 오늘은  (0) 2014.11.17
성동혁, 창백한 화전민  (0) 2014.11.17
성동혁, 창백한 화전민​  (0) 2014.11.17
이현호, 붙박이창  (0) 2014.11.10
김혜순 - 새가 되려는 여자  (0) 2014.11.10
김경미, 연희  (0) 2014.11.09
함성호, 지옥의 눈물  (0) 2014.11.09